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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내 아픔에 연연해 주저앉을 순 없었다”
기사입력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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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집 잃고도  복지센터 완공에 ‘올인
윤방현 한국노인회부회장(워커톤 총괄준비위원장)
어느 날 갑자기 불어 닥친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검은 숲 속을 연상시켰다. 뼈다귀만 앙상하게 드러낸 목재 구조물 사이로 타다 남은 가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재를 뒤집어쓴 앨범을 집어 든 노인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화재로 졸지에 집을 잃은 노인이 있다. 그런데 그는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이웃을 위해 발 벗고 나선다. 만사 편안하고 잘 나갈 때 남을 돕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환난 중에 거할 때도 주변 이웃을 돌본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화재를 당하고도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화제의 주인공은  윤방현 토론토 한국노인회 부회장이다.

집에 불이 났다고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저녁 시간에 세탁실에서 갑자기 누전으로 불꽃이 발생했다. 삽시간에 번지는 불길을 잡아보려고 바가지로 물을 부어보았지만, 머리만 불에 그슬린 채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불타는 집을 바라보면서 아내와 나는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졸지에 거리에 나앉은 난민 신세가 되어 아들 집에 며칠 얹혀살다가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얻어 준 임시 거처인 방갈로 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옷이며 가구며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 만사 고통 가운데 있다. 몸도 성치 않은 아내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노년에 맞이한 고난이 주는 의미는? 처음엔 어쩌자고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야 하는지 하나님께 원망 많이 했다. 내 나이 70대 중반을 넘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노년의 안식처인 보금자리가 없어졌으니 제정신일 수가 있겠는가. 이민 오기 전에 남다르게 힘들게 생활하면서 삶의 둥지를 12번이나 옮기며 살았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광야의 삶을 살면서 정착하기 위해 뛰다 보니까 또 12번 이사를 했다. 이제는 쉬면서 인생을 차분히 관망하고 싶은 나이인데 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는 쉬고 싶은데, 본향을 가기 전에 순탄치 않은 삶의 노정이 앞에 놓여 있는 심정이다.

환난 가운데 함께한 의인들이 있다는데... 그렇다. 사람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전화해서 위로하고 방문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옷가지와 그릇을 가져오기도 하고 파독 광부 출신으로 캐나다 땅에 첫 발을 내디딘 한 불교신자 K 씨는 작지만, 위로의 징표라며 50 불을 봉투에 넣어 가져다 주시는 분도 있었다. 특히 일면식도 없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느 노인께서 친필로 세로로 써내려 간 위문편지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답지하는 도움의 손길이 나를 재충전시키고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안다. 우리는 보통 내 고통에는 민감하면서도,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마음이 되는 경향이 있다.
남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행복만 추구하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데... 내 코가 석 자인 사람이 남을 도울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보통은 내가 어려움 중에 있는데 남을 돕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가 아름답게 되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우리 주변과 역사를 잘 살펴보면 극진한 이타적 사랑을 표출하며 몸소 실천한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웃사랑은 실천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지속하기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며 내 가족이라는 의식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더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말이 있다. 로버트 슐러 목사가 한 말씀이 생각난다. “Tough times never last, but tough people do.”                                        (시련은 영원하지 않지만, 시련을 견디는 사람은 영원하다.)
워커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힘없는 한국 노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모금 운동에 나선 지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번에는 한국 노인들의 숙원인 한인종합복지센터 증축이 완공되어 준공식과 함께 모기지 원리금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제29회 워커톤이 실시된다.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사회경제적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노인들은 한인종합복지센터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 무엇보다 새로 지은 건물에 대한 자금부담 능력이 부족한 노인회를 위해 범교민적으로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으자고 외치고 다니는 것이 내 일이다. 모두가 부회장인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집이 불에 타 없어져 내 코가 석 자라며 도망갈 수만은 없었다.
한인종합복지회관 준공이 주는 의미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생활하기도 힘든 노년세대가 후세를 위한 헤리티지를 세운 것이다. 40년 전 워커톤 기금마련을 외치던 사람 중 많은 분이 돌아가셨으며, 생존하신 분들도 어느새 세월의 강물을 넘을 날을 바라보는 80~90대 나이에 접어들었다. 이제 한인종합복지센터는 한인 후세대를 위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이 센터를 앞으로는 한인 모두가 책임지고 유지 관리와 운영을 이끌어야 한다. 이곳은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만나는 자리여야 하며 후세대들이 노인공경과 효사상을 배우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깨닫고 가는 산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한인 후세들이 노인들의 뜻을 이어받아 역사적인 한인종합복지센터의 주인으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매년 워커톤을 하는 이유는? 한인 중 상당수가 “왜 노인회는 매년 돈을 달라고 하는가?”라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 심지어 워커톤을 준비하는 준비위원들도 “밖에서는 또 노인들이 손을 내민다고 뭐라 한다”며 맞장구를 치는 경우마저 있다. 하지만 이는 토론토 한국노인회의 특성과 워커톤의 의미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다. 원래 ‘워커톤’ (Walk-a-thon)이란 말은 행진이나 달리기 등을 하면서 일정 거리마다 일정액을 내는 후원자를 찾는 모금 행사를 의미한다. 자선 봉사단체인 토론토 한국노인회는 회원구성의 특성상 자생력이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캐나다 각급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grant)만으로 운영되기에는 턱없이 돈이 늘 모자라는 상태다. 그래서 매년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워커톤 행사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노후화된 기존의 노인회관 건물을 증축해 한인종합복지센터로 리모델링 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갔다. 증개축 공사에 온타리오 주정부로부터 건물 안전도 검사문제가 제기돼 공사 기간이 오랫동안 지체됐을 뿐만 아니라 벽체를 보강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애초 총공사비 90만 불이 135만 불로 증가했다. 부족자금을 메꾸기 위해 외환은행에서 모기지 47만 불을 받았다. 앞으로가 문제다. 모기지 원리금 월 2,800여 불과 직원급여, 그리고 기본운영비를 합해 매달 1만 불 정도가 소요된다. 현재는 빚으로 버티고 있지만 노인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결국, 토론토 한국노인회 한인종합복지센터를 한인 후세대들이 책임지고 운영하기까지, 즉 정부 보조금만으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기까지는 매년 워커톤을 실시해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한인 자선단체 중 한인회와 여성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부족해 매년 기부금 모금 행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한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토론토 한국노인회 임성옥 이사 부부는 캐나다에 이민 온 지 10년밖에 되지 않아 정부가 주는 노인연금 혜택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워커톤 행사에 보태라고 2,000불을 기부했다. 그 돈은 부모님 생일 때 여행 가라고 아들 내외가 준 돈이라고 한다. 아들 내외가 부모님께 효심을 다해 드린 여행 경비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공익을 위해 자선단체인 토론토 한국노인회에 선뜻 내놓는 그 마음이 고맙고 아름답기만 하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한인들에게서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한인교회에 바라는 바가 크다. 많은 금액을 바라지 않는다. 한 번에 큰 금액을 기부해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보다는 다만 예산의 1% 미만이라도 꾸준하게 정기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교인들은 토론토 한국노인회를 지정한 목적헌금을 해 주셔도 좋고, 은행에서 자동이체로 매달 10불~100불 선에서 자동 기부하는 방법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인 젊은이들에게는 전시용 자원봉사가 아닌 진정한 자원봉사를 토론토 한국노인회 한인종합복지센터에 와서 하라고 권한다. 이곳에 주기적으로 와서 청소해준다거나,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준다거나, 서류 작업을 도와주고 노인들을 위해 영어봉사를 한다거나 등등 자원봉사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힘과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어버이를 지게에 지고 가는 심정으로 넉넉지 않은 호주머니를 털어 워커톤 기금으로 내놓는 한국 노인들의 겨레 사랑은 젊은이 못지않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떠나 한인 커뮤니티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 나는 남들이 걷지 않은 신학을 한 후 목회자로 파송 받았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세계 선교부를 통해 오랜 세월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나의 모든 삶의 부분이 목회자로서 하지 못한 일을 되갚는 심정으로 사회의 불우한 이웃, 늪지에 사는 이웃을 찾아 돌보는 모습으로 살아오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지극히 단순하다. 우리 노인은 그저 건강하게 가까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자세를 배우는 노인들이 우리 곁에 있다. 유한한 시간 우리 곁에 있을 노인들을 위해 모든 한인은 어버이를 지게에 지고 가는 심정으로 노인들을 공경하고 봉양해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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