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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나눔은 어려운게 아니야, 뭔가 받으려는게 어려운거지”
기사입력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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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모금운동의  산 증인
한상훈 29대 워커톤 공동 대회장
 (이성한 기자 sung@cktimes.net) 토론토 한국노인회(회장 김정배) 29회 워커톤 행사 공동 대회장을 맡게된 한상훈 대회장을 만난 것은 무더운 여름 8월 3일, 그의 자택에서였다. 넒고 푸른 정원에서 본보 기자를 맞이해주는 한 대회장과 그의 아내 민병재 여사의 얼굴에서는 시종일관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거실에 함께 앉아 한 대회장과 민여사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한인회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지금의 한인회관을 건립한 한 대회장과 민여사의 삶은 한인사회 역사와 나눔 그 자체였다. 기자(이하 기) : 한인종합복지센터 모금을 위한 워커톤 행사 대회장을 맡게 됐다.
한상훈대회장(이하 한) : 중책이라 처음에는 고사할까 했지만 세대가 다른 이기석 한인회장과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라 맡기로 했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인들이 모두 사용할 유산이니 모쪼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기 : 한인회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오늘날 한인회관을 만든 주역으로 알고 있다. 오늘 그 회관에서 집무하는 이 회장과 함께 일하니 감회가 남다를 듯 싶다.
한: 아무래도 그렇다. 복지센터가 노인회 전유물이 아니라 한인 공동 유산으로 사용되는 만큼 세대를 넘어서 이 회장과 힘을 합치니 느낌이 남다르다. 지금 한인회관 이전에도 모바일 드라이브에 위치했던 예전 한인회관 건물도 건립위원장을 맡았다. (지긋이 바라보며) 참 일이 많았지. 그 전에는 건물에 방한칸 세들어서 한인회관이라고 했었어.
기: 당시 한인사회 규모가 더 작았던 만큼 예산확보가 힘들었을 텐데.
한: 그렇지.당시 20만불이 필요했는데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 집권 중일 때니 엄청난 돈이였지. 그래서 캐나다 대사로 재직중이던 한병기 대사에게 찾아가 부탁을 했지. 한 대사가 박 대통령 사위였거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7만 5천불을 모국에서 지원받았어. 고마운 일이지. 그 후로 20년간 사용해오다 한인수가 아무래도 늘어나니 확장해야겠다 싶어 지금의 한인회관 자리로 옮겼지
기: 지금의 한인회관은 어떻게 지었나.
한: 당시 밥 레이 온주수상을 만나 예산지원을 부탁했지. 그러니 레이 주수상이 100만불을 약속하는데 대신 조건이 한인들이 자체적으로 100만불을 모아오면 매칭펀드 형식으로 그 돈을 지원해주겠다는 거야. 그래서 교회며 한인 단체들이며 찾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시작했지. 한국인 근성이 어디가나. 목표가 주어지니 목표액이였던 100만불을 초과한 120만불을 모아왔지. 그때는 참 대단했어.
기: 완공 후 소감이 남달랐겠다.
한:이르다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토론토에 방문했는데 지금의 한인회관을 방문할 때는 고국 대통령을 모실 장소가 있다는 것이 참 기분 좋았어. 지금도 한인회관을 보면 내가 저기에 일조했구나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조용조용 말을 이어가던 한 대회장은 지금의 한인회관 이야기를 하자 금새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부터 지역사회에도 여러 나눔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한인사회도 많이 도왔지만 지역사회 일도 많이 도왔지. 84년부터 집 근처 병원에 기부도 하고 집사람이 거기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어.
민병재 여사(이하 민): 말이 좋아 봉사지. 내가 얻어가는게 더 많아.
기: 어떤 의미에서 인가?
민: 상투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배우는게 더 많아. 여기서는 더 오랜 기간 봉사한 사람들도 많거든. 봉사자가 천명이 넘어… 그만큼 봉사자가 많지. 나는 그 중에 휠체어를 담당해. 한 10분동안 휠체어로 데려다 주며 대화도 많이 나눠. 가다보면 봉사활동에 대해 많이 물어. 봉사활동을 얼마나 됐나 어떻게 하게 됐나. 그러다보면 자기도 나으면 봉사활동을 나오겠다고 하더라고. 보람도 많이 느끼고 배우는 점도 많아.
한: 가끔은 고맙다고 팁도 주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웃음)
민: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 서로 만나면 기분좋게 만들어주는농담도 하고.
한: 인생을 즐길 줄 아는거지. 다른 사람도 돕고
기: 84년부터면 굉장히 오랜 기간 봉사한 것 같다.
한: 처음부터 많이 하진 않았어. 처음에는 매달 2백불 정도만 기부했지. 이번에는 5천불을 기부했지만. 조금씩 나누다가 나눔이 커진거지.  처음부터 나눔을 크게 하긴 쉽지 않지. 그당시 내 사업이 크지도 않았고. 내 사업도 커지니까 자연스럽게 나누는 규모도 커졌어. 이제 30년이 됐네. 나눔은 죽을 때까지 하는거야. 내 유서에 어떻게 기부할건지도 다 남겨놨어.
기: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렇게 오랜기간 남을 돕는게 어려움은 없나?
한: 주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게 뭐가 있어. 내가 받으려고 해야 어려움을 느끼는거지. 돌려받을 생각이 아니라 나누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어. 이말을 하는데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한 대회장의 표정은 한없이 편안해보였다. 기: 특히 병원을 돕게 된 계기가 있나?
한: 병원이 집 근처거든. 가까운 곳부터 먼저 나누는거지. 먼 곳을 찾을 필요가 있나? 가까운 곳부터 먼저 나누는거지. 일상에서 도울 수 있은면 그리하는거지.
기: 나눔의 일상화인가?
한,민: (웃음)그런거 같네.
기: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한: 계기라고 해야하나. 사실 당연한 것이거든… 캐나다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사니 그 고마움의 뜻에서 환원하기로 한거지. 일종의 보은이라고 보면 될까? 그리고 굳이 꼽자면 기부 캐나다의 시스템도 한몫했지. 이곳은 기부를 하면 세금도 공제해주고 기부를 쉽게 하도록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거든.
기: 하지만 세금 공제보다 더 큰 규모로 기부하지 않나?
한: 당연하지. 누가 그걸 목적으로 하나. 그건 주와 부를 바꿔 생각하는 거고. 하지만 일단 그런 기부를 유도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다만 기부하기가 더 쉽다는 뜻이지.
기: 기부한 병원에서도 두 부부의 이름을 딴 병실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민: 111호실 병실에 우리 두 부부의 이름을 새겨놨어. 한글 이름과 영어 이름 둘다. 간혹 한국인이 입원하면 연락도 오고 그래. 사실 이렇게 하면 우리 한인들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중국 커뮤니티만 해도 기부를 많이해서 우리가 봉사하는 병원에도 한자로 크게 현판을 걸어놓더라고. 큰 그림을 봐야해. 우리 한인들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봐.
기: 자녀들은 기부에 대해 혹여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는 않나?
한: 내가 안 도와줘도 다 잘먹고 잘 살어(웃음) 다 당연하다고 생각해.큰 아들은 미국 워싱턴주 인텔에 입사했고 작은 아들이 사업 물려받아서 잘 하고 있고…
민: 큰 아들은 토론토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정착해서 잘 살고 있꼬 작은 아들은 토론토 대학 나와서 MIT 대학원 부동산 개발과도 나온 후 여기에서 아버지 사업을 잘 관리해 도와주고 있어. 작은 아들에서 난 손녀들도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
한: 지금 UTS를 다니고 있어 불어도 잘하고 아주 영특해 .
민: 그 전에는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더니 거기 동양인들이 많아 자주 어울리다 보니 요즘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 이번에 한국에 보내보려고 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못 보냈네.
인터뷰 내내 기부는 당연한 것이라며 겸손하던 두 부부는 자녀와 손주 이야기가 나오자 자녀와 손주 자랑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자녀와 손주를 자랑하는 두 부부는 부모의 사랑으로 가득한 여느 부모와 다를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인 이민자 1세대의 삶이고 한인 공동체의 역사였다. 한인회관 건립을 2차례나 주도했던 한 대회장의 꿈은 아직 끝이 아니였다.
한: 바램 같아서는 한인회관과 복지센터와 여성회 등 모든 한인단체들이 함께 모여있는 한인타운이 조성됐으면 좋겠어. 일단 내 소임은 복지센터 완공이 우선이니까 그것부터 마무리 지어야겠지. 최선을 다할꺼야. 여지껏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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