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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피니언] (중앙 글 사랑 마을) '악수'
기사입력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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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나는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큰소리를 질러 본 적도 별로 없다. 아주 안 한다고 하기는 양심이 좀 꺼린다. 그런데도 내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말로 아이들을 고치려거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두세 살 터울의 고만고만한 사내아이 셋을 키우면서 그 악역을 아내에게만 맡긴다는 뜻은 아니다. 아들과 아빠 사이에는, 아니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을 조정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내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어서다. 악수다.
 “아들, 악수하자.”
 아이들이 시험을 잘 못 봐 낙심하고 있을 때도, 운동 경기에 져서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와 미안해할 때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 악수하자. 악수하면 되는 거야.”
 손과 손이 서로 껴안을 때, 실망과 침울과 불안이 사라진다. 열 마디 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무언의 악수 한 동작이 모든 것을 풀어준다. 그 짧은 순간, 마음이 열리고 새 세상이 느껴진다. 악수는 사람이 만들어낸 최고의 몸짓이다.
 악수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악수하지 않는 다른 한 손은 어깨를 두드려야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해’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옅은 웃음이 흐른다. 그걸로 끝이다. 세상사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뜻밖에 단순하다. 악수 하나로 모든 게 이해되는 사이, 그게 바로 부자 관계 그리고 사람 관계여야 한다고 믿는다.
 
 1984년 스물두 살 가을 끝자락, 나는 머리를 빡빡 깎고 논산행 기차를 탔다. 그날 아침, 아버지께 큰절을 올렸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난생처음 해본 큰 절이었다. 아버지가 워낙 격식을 싫어하셔서 큰절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설날이나 한가위 같은 명절에도 마다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석에 앉아 내 절을 받았다.
 “잘 갔다 와라.”
 아버지는 내게 악수를 건넸다. 아무 표정이 없으셨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집 밖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배웅했다. 비상금 몇만 원을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힘들어도 참아라. 밥 잘 먹고…. 기도할게.”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다. 마치 전쟁터에 끌려가는 것처럼, 그렇게 눈물로 나를 보냈다.
 이년 반 뒤,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예비군 옷을 입고 부모님께 큰절을 했다. 아버지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고생했다.” 단 한 마디뿐이었다. 얼굴에 웃음이 보였다. 안도의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꽃게를 삶아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잘 참아줘서 고맙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남자는 군대만 무사히 갔다 오면 사람이 되는 줄 아셨다.
 내가 첫 일터를 잡았을 때도, 일 년 예정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도, 큰아들을 품에 안겨줬을 때도, 뉴질랜드 이민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도, 몇 년 뒤 한국에 갔을 때도 아버지는 늘 손을 내밀었다. ‘남자끼리는 악수하면 되는 거야’하는 무언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마지막 악수를 건넨 것은 언제쯤일까. 생각해보니 2009년 2월 초로 기억된다. 간암 말기, 모르핀으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던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성기야~ 꼭 부자로 사는 게 복은 아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그러며 내 손을 잡았다. 핏기 하나 없는 손, 악수라고 할 수도 없는 힘에 부친 부자 사이 마지막 접촉이었다. 아버지는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그 여자의 손을 기억한다. 길고 하얀 손, 그리고 온기. 늦가을 어느 날 밤, 동네 공원을 뒤돌아서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첫 데이트가 끝나고 막 헤어지려고 할 때였다. 나는 갑자기 악수가 하고 싶어졌다. 신체 가운데 한 부분을 만지고 싶은, 스킨십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 손이라도 만졌으면 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천생 여자 손이었다.
 여자의 손은 늘 슬프게 다가온다. 꼭 남자 손보다 작아서가 아니다. 다섯 손가락 사이에 여자 특유의 슬픔이 묻어 있다. 그 생이 스무 살이든 마흔 살 또는 쉰 살이든, 아니 여든 살 소녀든 같은 질감으로 와 닿는다. 내게 그것은 쉽사리 잡을 수 없는 손, 너무 여려 바스러질 것 같은 슬픈 손이다. 그 손으로 사랑을, 가족을, 세상을 껴안지만 정작 그 손을 인간적으로 대하며 애정 있게 잡아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명 인사 손을 잡아본 경험이 있다. 대부분 형식적인 악수였다. 그 가운데 대통령 후보 김영삼, 서울 올림픽조직위원장 박세직, 재야운동가 백기완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손은, 악수는 무엇보다 힘이 세다. 그 힘은 어쩌면 그들이 가진 위치 또는 자신감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남자다움은 있었지만, 인간다움은 없었다. 손과 손 사이, 마치 쇠뭉치를 대하듯 사람의 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여자의 손, 악수는 달랐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봉사하는 수녀, 동화를 쓰는 작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간호 선교사, 그들의 손은 한결같이 작고 여렸지만 세상 온도를 일 도쯤은 높일 수 있을 것처럼 따듯했다. 손과 손 사이, 마치 솜사탕을 대하듯 부드러웠다.
 내게 사랑이었던 그는 유독 내 손 잡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다운 억센 악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공자다운 섬세한 손 마디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상하게 손을 잡고 싶다”며 내 손을 사랑해 주었다. 입술도, 가슴도, 허벅지도 저 세상 것이었다. “네 손잡고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며 늘 밝게 웃었다.
 연애하며 많이도 웃고 울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랑도 사위어갔다. 몇 해 뒤 초봄 늦저녁, 그가 내게 악수를 요구했다. “잘 가.” 그러면서 덧붙인 마지막 한 마디. “이 손을 언제 또 잡아보지. 참 좋았었는데….” 여전히 길고 하얀 손이었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나는 한때 내 사랑이었던 그의 길고 하얀 손이 유독 기억난다. 얼굴을 생각하면 눈물만 날 뿐인데, 손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손과 손 사이, 우리의 모든 것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가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져갔다. 둘 곳 없는 내 손, 가로등 불빛에 더 서글퍼 보였다.
 
 내 손을 유심히 다시 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손.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악수를 했던가. 스쳐 지나간 옷깃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과 인사를 했던가. 때로는 격려의 손, 때로는 믿음의 손 그리고 또 때로는 사랑의 손 역할을 다해 왔다. 그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내 손은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불현듯 악수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손이 남자든 여자든, 그 대상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 어느 순간 내 손을 펼쳐 상대방의 손을 꼭 잡고 싶다. 사람 온기에 허기가 진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손이 그리운 걸까. 내일은 그 누가 되든 무조건 악수를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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