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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피니언] (중앙 글 사랑 마을) 세 번째 누나
기사입력 201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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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장원 사내애들에게 ‘누나’  혹은 ‘누이’라는 호칭은 ‘엄마’라는 단어만큼 따뜻하다.더구나 남동생만 달랑 하나 있는 장남인 나로서는 ‘누이동생’보다 ‘누나’를 더 목말라 했다. 어릴 때 가정일을 도와주던 7,8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지만 그건 고추 내놓고 누나에게 목욕을 당하던 때라‘누나’라는 존재에 대해 무감각 했다. 그 누나가 시집 간 후로 특히, 사춘기 이후로는 누나가 있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워서 괜히 공부한답시고 친구 집에 찾아가서는 누나와 손목 맞기 가위바위보 등을 하며 그 부재를채우곤 했다. 나에게도 그런 ‘누나’가 생긴 건 그러니까 재수 생활이 본 궤도에 오른 79년 5월 쯤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동창이자 학원 동기지만 여자에 관하여는 쑥맥인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같이 좀 만나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핵심은 연애할 때 심심치 않게 들러리를 서 달라는 것이다.  그 때만해도 나불대기 좋아하던 시절이라 기꺼이 응답하곤 자주 학원을 탈출하여 그녀가 다니던 M대학을 같이 드나들게 되었다. 그런데 그 녀의 옆에는 항상 붙어 다니는 언니라는 누나뻘 되는 여자가 있었는데 자주 같이 어울리다 보니그 언니는 자연스럽게 나의 누나가 되었다. 국문과인데다 나보다 4살 정도 많았으니 주로 문학이나 철학 쪽얘기가 자연스럽게 오고 가게 되면서  이젠 친구의 들러리가 아니라 둘만 따로 만나기도 하였다. 호도 있었는데 ‘아화’ 라고 했다. 우리는 만나면 책과 철학에 대해 얘기했다. 재수생 주제에? 그 딴 건 상관없었다. 적어도 나와 대화가 되는 상대를 만났다는 기쁨에 우린 책을 서로 빌려 봤고 또 얘기했다. 루이제 린저,칸트가 기억난다. 그 때 메모한 <바다의 선물>의 몇 몇 구절은 아직도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있으며, 칸트는 잠깐 동안의 공부로도 철학과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러나 공부도 겸해야 하는 재수생이어서 시험이 다가오면서는 만남을 잠시 미뤘지만 오래 걸리진 않았다.대학생이 된 나는 신입생의 기쁨과 낭만을 즐기면서도 누나와의 만남을 지속했다. 유명한 정치가들 중에는 안 거친 사람이 많지만, 대체로 한국의 정상적인 남자라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군대를 들어가면서 휴가 때의 잠깐 동안의 만남을 제외하면 누나와는 편지로만 만났는데 중고참이 된 어느 날 날라온 편지가 내  마음에 뻥하고 바람 구멍을 뚫었다. 청첩장이었다. 나도 아는 그 M대학 국문과 형과 결혼을한다는…. 중고참인데다 본부 소대 소속이라 결혼식에 가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결국 가지 못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못 가서 되어 미안하다는 답장만 쓰고는 결국 두 번 다시 못보고 말았다. 사랑의 감정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을 빼앗겼다는 그런 감정이었다. 철이 들고 나서는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끊어진 줄이었다. 연결고리였던 그 친구도 애인과 헤어져 수소문할 방도가 없었다.그렇게 해서 나의 첫 ‘누나’는 가버리고 말았다. 아쉬움과 그리움만 남긴 채…… 그 이후로도 ‘누나’ 결핍증은 나보다 연상인 여자를 따라 다니게 만드는 운명같은 것이 되어  동아리에서도동기보다 여자 선배를 더 가까이하는 바람에 여자 동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눈높이는 언제나 조금 위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그 ‘아화 누나’와 같은 포근함과 격조 있는 대화는 그 이후 만난 누나들과는 나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민을 오고 어줍잖게 캘거리 문인 협회에 들어오고 나서 운정 누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첫 몇 년간은 문협 회원으로서 만났지만 그런 만남 가운데서도 품위를 발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따스한 마음으로 인해 난나의 두번째 ‘누나’로 삼았고 나이 차가 조금 나서 누나라고 부르기 보다 누님으로 불렀다. 주간 신문 편집장도 겸하고 있어서 시간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나자고 하면 흔쾌히 만나 세상 사는 얘기며 그동안 발표한 글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곤 했다.그러다가 2016년 가을, 결국 누님을 괴롭히던 병마에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누님의 남편께서 오히려 절 위로하시며 ‘이제 누님을 못 봐서 어쩌누…’하실 때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가 없는 이 곳에서 그나마 엄마의 따스함과 비슷한 ‘누나’의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시던 분이 떠나니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하였다. 나란 남자는 아내 외에 문학과 철학을 논하며 때론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누나가 필요한 모양이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분이 나타날 것 같지 않다. 첫 ‘누나’는 나의 변변치 않은 질투심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었고 두번째 ‘누님’은 병마가 앗아버렸다. 이제남은 생에서 세번째 누나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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