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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피니언] (중앙 글사랑) 문방사우
기사입력 20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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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서강 이정순(수필가/사스캐차완)


이민 오면서 제일 아쉬운 게 있었다면 서예를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스승님도 잃게 되는 제자가 아까워 하신 말씀이 있다. "이 선생! 고국이 그리울 때, 마음이 힘들 때 붓을 잡게나." 언젠가는 붓이 그리울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보물을 챙겨 오듯이 문방사우를 챙겨왔다. 문방사우는 종이, 먹, 벼루, 붓을 가리킨다. 행여 화선지가 꾸겨지지나 않을까? 붓에 손상이 가지나 않을까, 벼루와 먹은 깨어지지나 않을까? 에어백으로 싸고 또 싸맸다. 스승님이 하신 말씀처럼 녹녹치 않은 이민 생활에 마음의 위로가 된 게 바로 이 문방사우들이다. 비록 십여 년 붓을 잡지 못했어도 늘 마음속에 담고 있는 묵향은 힘든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
 
서예를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자랐다. 할아버지가 붓글씨를 쓸 때는 신선에 가까웠고. 얼굴에서 광채가 났고, 글을 쓸 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내 가슴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신기하고 멋져 보였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문으로 쓴 글씨체가 얼마나 신기하던지, 할아버지가 붓글씨를 쓰실 때면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밤새는 줄도 모르고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민 생활에 연륜이 쌓이다 보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싶어 늘 가슴속에 살아있는 문방사우들을 꺼내 보았다. 참 오랫동안 기다려준 이것들이 고마웠다. 당장 국전지 몇 장을 단숨에 써 내려갈 것 같은 마음에 먹을 갈았다. 하지만 십여 년의 공백기는 붓을 잡는 손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화선지에 닿은 붓끝의 떨림은 가슴까지 떨게 했고, 침침한 눈은 화선지 접은 선이 보이질 않았다. 부단히도 노력한 끝에 지금까지 서예를 해 온 도반들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보아 줄만 했다. 그 후 사스캐츠완 한인 문학회 시화전을 할 때면 직접 회원들 작품을 써서 두 차례 전시도 했다. 2015년에는 서예를 시작하면서 꾸었던 서예 개인전을 아무 준비도 없이 하게 되었다. 캘거리 문협 시화를 써주었더니 회장님이 개인전 프랭카드를 걸어 주었다.
 
요즈음은 서예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서예가 친구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물론 힘든 경제적 여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심혈을 기울이는 힘든 일은 기피하려 하고, 인터넷 버튼 하나만 누르면 힘들이지 않고 궁체, 서간체, 예서체, 정자체 등 감상하고자 하는 글씨체가 붓글씨보다 더 정교하게 인쇄기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하여, 서예인구가 줄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붓끝에 심혈을 모아 온몸과 정신으로 쓰는 한 획 한 획은 인쇄한 글과는 비교 할 수가 없다.
 
나는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서예를 30대 후반에서야 하게 되었다. 서예는 내면의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도를 닦는 것이다. 그 정신이 아니면 붓글씨를 쓸 수 없다. 요즈음은 먹을 가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먹을 간다는 것은 먼저 붓글씨를 쓸 마음자세, 즉 호흡을 고르게 하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다. 먹을 갈지 않고 먹물을 사서 쓴 작품은 살아 숨 쉬는 글씨체가 나오기 힘들다. 모든 것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제일 중요한 마음 다스리는 작업이 빠져 혼이 담기질 않는다. 요즈음은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시대다. 모르긴 해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소멸 될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신사임당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신사임당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그의 제삿날 5월17일 경복궁 대웅전에서 휘호 대회를 열어 사임당의 후예를 뽑는다. 내 자신이 사임당을 어머니로 모시는 영광을 안았기 때문에 그 드라마를 어머니를 만나는 심정으로 보았다. 그를 기리기 위한 휘호대회 행사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여, 옛 선비들의 무아경지에 이르는 서책을 대할 때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선비들의 머리맡에는 늘 문방사우가 차지했다. 요즈음 그 자리는 게임기나 컴퓨터가 차지하고 있다.

서예는 바쁜 일상의 스트레스, 게임이나 미디어에 중독된 머리를 해독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한테 권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서예이다. 서예는 자신을 다스리는 수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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