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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피니언] (중앙 글사랑 마을)고쳐 쓰고 싶은 추억들
기사입력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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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택
 
  한국에서 친구가 찾아 왔다. 몇 해전에 30여년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지내던 중모처럼 미국여행을 하는 참에 잠시 캐나다로 곁가지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은퇴후 고향에 내려가 지내다보니 비교적 시간여유가 많아 동창회 일도 적극적으로 하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창들과 어울려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고 하느라 늘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이야기중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지금도 어울려 여행을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약간 놀랍기도 하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인근 도시로 진학을 하였기에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오래 연락을 이어가지 못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요즘같이 비록 떨어져 있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것도 아니었고, 하다 못 해 전화도 아주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자연히 서로 연락이 뜸하게 되어 지금껏 소식을 주고 받는 친구가 없다.  그 친구 얘기로는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내가 다닌 초등학교도 분명 동문회웹사이트가 있을 거라고 했다. 난 사실 그 동안 어쩌다가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근황이 궁금할 때가 있어도 인터넷에서 동문회를 찾아 볼 생각은 해 보지 않았었다.
 
  친구와 헤어져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총동문회카페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한 학년에 두 반씩 총 열두 학급이 있는 조그만 시골 학교였었는데,지금은 졸업생이 한 해에 열 몇 명밖에 되지 않는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어느덧 나는 땟국 흐르는 꽤죄죄한옷을 입고 시골학교 교실의 낡은 책상에 앉아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은 그 시절의 기억들이 별로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중에는 아직도 머릿속에 흑백사진으로 생생하게 박혀 있는 기억들이 몇 개 있다.웬 일인지 “그 땐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되는 일들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4학년 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산수시간에 각도에 대한 걸 처음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직각이몇 도인지 아는사람?”이라고 물었다. 나를 포함해서 서너 명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반에서 나와 늘 1,2등을 다투던 여자아이에게 먼저 대답을 해보라고 지목을 하셨다. 그 아이는 틀린 대답을 했다. 다음에 나를지목하셨다.
 
 “90도입니다.”
 
당당하게 대답했다. 맞았다고 칭찬을 들었고 수업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그 후 하루 종일 기분이영 개운치가 않았다. 나도 모른 척 하고 엉뚱한 대답을 할 걸 하고...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누군가와 치고 받으며 싸운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당시 나는 또래들 보다 키는 약간 큰 편에 속했지만, 마른 체격이었고 싸움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키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당시 시골아이들답지 않게 제법 살도 쪘었고 몸집이 실하게 생겼었다. 선생님이 “장장군”이라고 별명을 붙여 부를 정도로 씩씩한 아이였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가 무슨 일로그 아이와 시비가 붙어서 서로 엉겨붙어 치고 받으며 맨바닥을 뒹굴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 코에서 피가 났었는지는 확실한 기억이 없다. 어느 친구가 일렀는지 어디서 선생님이 금방 나타나셔서 싸움은누가 이기고 지는 것도 없이 엉거주춤 끝이 나고 말았다. 내가 평소에 싸움을 자주 하거나 말썽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어서 그랬던지 선생님은 우리 둘을 꾸짖거나 벌을 세우시지도 않았다. 그냥 씩 웃으시고 교무실로도로 들어가셨다. 싸움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머리에 남아 있다. 몇 학년 때인지도, 왜 싸웠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 때도 내겐 욱 하는 불뚝성질이 있었던 듯 하다.
 
  5학년 때 쯤이었을 게다. 동무들과 어울려 놀기 바빠 숙제를 하지 않고 학교엘 갔다. 가끔은 숙제 검사를하지 않고 “ 다들 해 왔지?”하고 넘어 가는 경우도 있었건만 그 날 따라 숙제를 일일이 검사하시기로 마음먹었는지 숙제한 공책을 책상위에 모두 펼쳐 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자수를 할까 잠시갈등을 하다가 그냥 숙제를 하지도 않은 공책을 책상위에 펴 놓는 속임수를 쓰기로 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리를 굴려 평소에 공부도 잘 하는데다 숙제를 안 해가는 일이 자주 있지도 않은 착한 학생이라는 이미지를악용하여 그런 대담한 짓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작전은 예상대로 통해서 선생님은 내 공책을 건성으로 스쳐 보고 지나가셨고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려 평생의 회한으로 남아 있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에는 연필로 공책에 필기를 할 때 그냥 쓰면 제대로 진하게 써지지도 않고 뒷장에 자국이 남기도 해서 책받침을 받치고 썼었다. 얇은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는 제품들은 좀 쓰다 보면 금방 찢어지기 일쑤여서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그 때까지 볼 수 있었던 책받침과는 격이 다른 아주 튼실하게 두껍고 색상도 양면에 푸른 색과 자주색의 멋진 물결무늬가 새겨진 책받침이 새로 나왔다. 마침새로 책받침을 사야 할 때가 되어서 큰 맘 먹고 제법 비싼 그 신제품을 남들보다 일찍 사서 기분 좋게 쓰고있었다. 그런데, 내 앞자리에 앉은 여자아이가 내 새 책받침을 보더니 대뜸 자기 거랑 바꾸자고 했다. 평소에주로 싸구려 학용품만 쓰던 나와는 달리 그 애는 크래파스를 비롯한 다른 학용품들을 늘 좋은 걸로만 쓰던아이여서 내가 늘 부러워 하던 터였다. 거기다 공부도 잘 하고 예쁘장한 아이여서 평소에 은근히 환심을 사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 한 제안을 불쑥 받은 나는 얼떨결에 싫다고 해 버렸다. 돌아서며 금방 후회를 했다. 그냥 줘도 아깝지 않을 걸 바꾸자는데 싫다고 하다니… 야속하게도 그 아이는 다시조르지 않았다. 이튿날 그 아이 손에는 나와 똑 같은 책받침이 들려 있었고, 지금껏 나는 그 일을 후회하고있다.
 
  그 때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 사실은 선생님을 속였었습니다”고 고백하고 싶다. 어쩌다 그때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땐 미안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 땐 철이 없어서 그랬노라고.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때보다 그다지 더 철이 든 것 같지 않아서 부끄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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