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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피니언] (중앙 글 사랑 마을)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기사입력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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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70년대 초, 그러니까 초등학교 일이 학년 무렵이었다. 긴 방학만 되면 며칠씩 경기도 소사(현재 부천)에 있는 큰집에 놀러 가곤 했다. 세 살 많은 형이 내 여행동무였다. 비록 서울 변두리에 살아도 엄연한 ‘특별시민’이었던 나는 버스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멀고 먼 시골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고만고만한 다섯 자식 뒤치다꺼리에서 잠시라도 해방되려고 한 엄마의 계획을 알아차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큰집은 공터를 빌려 양계장을 했다. 두세 동 정도의 비닐하우스에는 하얀 닭, 갈색 닭들이 밥 달라며 꼬꼬댁 노래를 불렀다. 비릿한 닭똥 냄새가 집 안까지 스며들어왔다. 큰아버지의 검정 장화에도, 큰어머니의 앞치마에도 역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내가 큰집에서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텔레비전도 없었고, 장난감도 없었고, 책도 없었다. 밥 먹고, 밥 먹고, 또 밥 먹고. 그렇게 아홉 끼만 먹어주면 서울특별시로 돌아갈 수 있었다.

큰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한 미남이었다. 1920년대 초,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큰아버지는 힘이 하도 쎄서 젊은 시절 평양 씨름대회 우승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고 한다. 상품은 늘 소 한 마리였다. 얼굴도 잘생기고, 힘도 좋았던 큰아버지는 결혼 초, 바람기를 맘껏 보여줘 집안이 늘 어수선했다. 여덟 살, 철부지에 불과했던 내가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큰어머니의 악담 때문이었다. 자식 자랑, 남편 흉이 밥상의 반찬이었으며 저녁 간식이었다. 훗날 돌아보니 큰어머니는 박경리가 쓴《토지》에 나오는 걸물, 임이네와 비슷했다.

유배지 생활 사흘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나는 가출을 결심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큰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을 대충 먹고 집을 나왔다. 그냥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양계장을, 동네 허름한 집들을, 철공소와 구멍가게를 지나쳤다. 여덟 살 사내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만화경 같았다. 얼마나 걷고 또 얼마나 헤맸을까? 오후 네다섯 시 쯤 되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배는 점점 고파오고….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맸던 것 같다. 초라한 상가 건물들의 삼십 촉 전구가 막 빛을 발하려고 할 때였다. 그때 저 멀리서 어디서 본 듯한 큰 그림자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큰아버지였다.
 “성기야.”
 큰아버지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 반쯤은 웃고 또 반쯤은 화내시려고 했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등을 돌려 나를 업었다. 나는 그 넓은 등에 바싹 얼굴을 묻었다. 큰아버지의 작업복에서 비릿한 닭똥 냄새가 풍겼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제 아들에게 전화 좀 걸어 주세요.’(I have lost my way. Please call to my son. 021 272 OOOO)
 두 주 전, 어머니가 이사했다. 십여 년을 살며 정들었던 오클랜드 서쪽 핸더슨을 떠나 노스쇼어 글렌필드 쪽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어머니는 살아온 햇수가 여든다섯이 넘도록 제 둥지를 못 잡았다. 원죄는 다섯 자식의 무능 혹은 무관심 때문이었다.
 어머니 집 이사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뒹숭생숭했다. 전에 살던 집에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비워주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섯 주 시간을 얻었지만, 어머니가 거처할 마땅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적당한 집이 나타나 계약하고 싶었는데도 집주인은 어머니의 나이를 핑계로 집을 주지 않았다. 그 마음 쓰라린 사실을 자식 된 내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어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글렌필드에 집 한 채가 교민 포털 사이트에 나왔다. 방도 깨끗하고 대중교통도 비교적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게다가 집주인 성품이 훌륭해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 들어 살고 싶다는 관심을 표한 뒤 며칠이 흘렀다. 집주인은 어머니에게 집을 주었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고, 또 아들이 효자 같아 집을 내줬다”고 말했다. 핸더슨 집을 비워줘야 하는 일주일을 앞두고 결정됐다.

 이사 뒤 거의 날마다 어머니 집에 들렀다. 새 둥지에 따듯한 공기를 채워주고, 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일뿐이었다. 조금 더 효도 티를 낼 수 있다면 어머니 얘기를 조금 더 성실하게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 주일을 보낼 즈음, 나는 갑자기 가슴이 아렸다. 어쩌면 어머니가 이 낯선 동네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짧은 전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제 아들에게 전화 좀 걸어 주세요.”
 어머니를 위해서는 한글로, 도와줄 사람을 위해서는 영어로 썼다. 몇 줄 안 되는 글이지만 글 쓰는 그 짧은 시간, 내 가슴이 무척 쓰라렸다. 길 잃고 헤맬 어머니가 떠올라서였다. 치매기도 하나 없는 정신 멀쩡한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비상 대비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나흘 전, 비상 전단을 두 장 프린트해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 혹시 길을 잃으면 이 종이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세요. 꼭 비상시에만 써야 돼요.”
 어머니는 유심히 전단을 보았다. 그러면서 씩 웃을 뿐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 이마 주름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고개를 텔레비전 쪽으로 옮겼다. 어머니는 소리 내지 않으며 웃었고, 나는 소리 내지 않으며 울었다.

오늘 낮, 어머니 집에 들렀다. 나를 보자마자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성기야, 이 종이가 나를 살렸다.”
 벌써 한 번 사용한 것이다. 어제 버스를 타고 타카푸나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려 모르는 사람에게 내밀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집까지 태워주었다고 했다. 그 긴 과정을 두 번 세 번 설명하는 내내 어머니는 웃었고, 듣는 나는 내내 울었다.
 며칠 사이에 벌써 조금은 너덜너덜해진 그 종이를 보는 순간, 나는 어머니에게 전단을 코팅된 것으로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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